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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섭(李英燮·전 대법원장)
"유민이 일러주어서 경성대학 법학과에서 상법 제2부(회사법)시험에 우수한 성적을 받은 일이 잊혀지지 않는다. 당시 회사법의 교수는 니시하라 간이치(西原寬一) 교수였는데, 시험에는 꼭 판례비평이 출제된다면서 그 대비책으로 그 교수가 『민상법』잡지에 집필한 것을 읽어 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유민이 일러주는 대로 공부했더니, 출제는 과연 판례비평이 났다. 유민의 지도에 감읍할 따름이었다"

계창업(桂昌業·전 변호사)
"유민도 나도 영화를 좋아해 새 영화가 들어오면 놓치지 않고 관람했다. 일주일에 두세 번쯤은 갔으니까·····여행도 빼놓을 수 없는 대학생활의 일부였다. 친구들 중 한 사람의 시골집 방문이 여행의 시작이었다. 시골집 사랑방을 공부방으로 정해 몇 친구들이 생활을 함께 했다. 그러다가 며칠은 가까운 산·바다·온천장 혹은 사찰 등 명소를 찾았다. 유서 깊은 서원을 찾아가 선비들과 담론하는 일도 여행의 보람이었다.



문홍주(文鴻柱·전 문교부장관)
"유민과 나는 무엇이든 일본인에게는 지기 싫었다. 특히 우리 둘은 강의시간 외에는 거의 도서관에 틀어박혀 있었다. 그러다보니 어느새 도서관의 우리 자리가 고정되어 버렸다. 우리가 늦게 들어오는 때에도 우리 둘의 자리는 비워두어 도서관의 두 자리는 어느새 유민과 나의 지정석이 되었다."

황산덕(黃山德·전 문교부 장관)
"특히 유민의 화술은 뛰어나 그로부터 법학공부의 요령이라든지, 교수들의 평가 내지는 독서방법 같은 것을 상세히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학부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나는 법학공부에 관한 많은 예비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 관계로 나는 2년 동안에 학점을 모두 딸 수 있었고, 나머지 1년은 동경에 가서 공부할 수 있었다. 나중에 생각해 보니 내가 그렇게 학점을 빨리 끝낼 수 있었던 것은 역시 유민으로부터 들은 예비지식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이라 생각한다. 역시 그는 나의 선배였다."

민복기(閔復基·전 대법원장)
"유민은 문과 쪽 한 명으로 선택되어 경성제대 최초의 한국인 조수가 되었다. 사법연구실의 책임자이자 일본 상법학계의 권위였던 니시하라(西原)교수가 지도교수였다. 당시 니시하라 교수는 월 1회 독일법 강독회를 열었다. 그 때 나는 경성지법 판사로 있을 때이지만, 그 교수의 강독회에는 빠지지 않고 참가했다. 경성제대의 일본학자와 현직 법관 등 30여 명이 강독회에 참가했는데, 유민은 이 강독회의 진행을 맡고 있었다. 강독회의 주제와 토론의 내용은 요약 정리되어 학내 잡지에 실리곤 했는데, 독일어가 뛰어난 유민이 이 일을 주관해 잘 처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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