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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각(徐廷覺· 전 변호사)
"홍선생님과 우리 집안은 세교(世交)가 있었다. 나 역시 경기고 출신으로 후배이기도 하여 홍선생님이 큰형님처럼 생각되었다. 그러던 차에 상법강의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수강신청을 했는데, 그 첫 시간에 리포트가 부과됐다. 내 딴으로는 꽤 열심히 써내면서 A학점을 자신했는데 결과는 C였다. C를 받고서야 그 때의 우리 학교를 돌아보고 내 스스로 돌아보면서 학문에 대한 결의를 다졌던 기억이 새롭다."

김일환(金一煥·전 내무부 장관)
"홍진기 법무부 장관은 한·일회담을 준비하게 했고, 대일 교섭을 능란하게 해내는 과정에서 대통령의 신임을 쌓았다. 한·일회담 때도 대통령은 홍대표에게 특별한 격려를 했었다. 아마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직후였던 듯한데, 홍법무는 대통령의 부름을 받아 경무대 집무실에 갔다. 이때 대통령은 홍법무에게 앞자리를 가리키며 앉으라고 했다. 그러더니 대통령은 갑자기 홍법무의 두 손을 잡고 'You have to remain as honest as you are.' 라고 말하고 두 손에 입을 맞추었다. '자네는 한결같이 정직해야 하네'라는 뜻이지만 그 보다는 신뢰의 표시고 확인의 뜻이 담겨 있었다. 대통령의 이 뜻밖의 행동에 홍법무는 몹시 당황했지만 대통령의 말씀이나 동작에 전혀 어색함이 없었다."



신두영(申斗泳·전 국무원 사무국장)
"국무회의에서 대통령이 관계장관의 설명에 부족함을 느끼거나 대통령이 잘못 알고 책(責)하는 일이 있을 때면 홍법무가 대신 설명하는 등 대통령의 오해를 자연스럽게 해소하곤해 자연히 국무회의를 이끌어가게 되었다. 그러다가 59년 조정환 외무장관이 해임되고 후임 장관을 임명하지 않은 채 최규하 차관이 장관직을 대행하게 되면서 중앙청 국무회의는 홍법무가 주재하게 되었다."

김정렬(金貞烈·전 국방부 장관)
"3.15대통령선거 때 부정선거로 말미암아 비상사태가 일어나고 있을 때도 홍내무와 나는 이기붕 의장에게 갔었죠. 그 때 홍내무는 이의장에게 강경진압은 현명한 방법이 아니라고 설명하면서 '지금 마산이 쑥대밭이 된다 해도 오히려 여기서 민중의 울분을 풀도록 해주어야지, 이 일이 다른 곳에까지 파급되기 시작하면 그야말로 사태는 걷잡을 수 없게 된다.' 진주와 부산에서도 데모의 기운이 일고 있는 이때 어떻게 강력수단을 쓸 수 있겠느냐'고 이의장의 강경진압 의견에 대해 강력히 설득을 했죠."

송인상(宋仁相·전 부흥부 장관)
"1961년 유민과 나는 수형생활이 시작되었다. 기결수감에선 여럿이 함께 기거하고 운동 때는 다른 방의 동료들도 마주칠 때가 많았다. 그런데 교도소 생활에선 서로를 부를 때 이름을 부르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우리는 아호를 쓰기로 해서 나는 회남(淮南)이라 지었다. 홍진기 형의 아호는 우리의 선배인 이중재(李重宰) 전경성전기 사장이 지어주셨다. 그 분도 자유당 기획위원 탓에 함께 수형생활을 했는데, 홍형에게 '유방(維邦)'이라는 아호를 지어주셨다. 뜻은 유민의 인품과 의지에 아주 잘 어울리는 아호로 생각되었는데 내가 우스갯 소리로 '그걸 읽으면 다른 것을 연상하게 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홍형이 이중재씨에게 '저는 늘 백성을 생각하며 살아가겠다는 마음이니 선배님께서 지어주신 유자(維字)를 빌어 유민(維民)이라고 하고 싶다'고 해 그렇게 부르게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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