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21세기를 개막하며 새로운 변혁의 시대에 직면해 새로운 신념, 새로운 세기의 이정표에서
역사 진흥의 길잡이가 되어 헌신의 노력을 경주해야 할 것입니다"
유민 홍진기 1917 - 1986
그의 생애는 험난한 시대 상황을 뚫고 새로운 방향성을 제시해 온 개척자의 삶,
그것이었다. 앞을 내다보는 예지와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는 철저함으로 언제나
그 스스로 변화를 선도하는 선구자가 되었던 것이다.
그것이었다. 앞을 내다보는 예지와 다가오는 미래를 준비하는 철저함으로 언제나
그 스스로 변화를 선도하는 선구자가 되었던 것이다.
유민의 생애는 굴곡 깊은 한국 현대사와 함께 살아왔다. 1917년 그가 태어난 조국은 식민지
땅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일본인보다 총명한 청년으로 자랐다. 경성제일고교를 거쳐 당대
최고의 엘리트 코스였던 경성제대 문학부에 진학함으로써 그 생애 첫 발을 법조계에 내딛게 된다.
해방된 조국의 국민으로서 그는 건국의 기반을 다지는데 앞장섰으며,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터전 위에 국가 재건이라는 큰 책무를 짊어졌다. 외국무대를 누비며 한국의 국익을 대변했고,
국내 정치무대 에서는 최연소 국무위원으로서 혼란한 정치상황을 헤치고 나라의 기초와 질서를 만들어 갔다.
5.16 후 그는 언론계에 투신했다. 제3공화국에서 5공화국을 거쳐 오면서 모든 시련을 뛰어넘어
명실상부 시대를 앞서가는 새로운 언론상을 정립하였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면서 어디서나
유민은 우리의 역사 속에 있었고, 역사 그 자체를 만들어 왔다.
땅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 어떤 일본인보다 총명한 청년으로 자랐다. 경성제일고교를 거쳐 당대
최고의 엘리트 코스였던 경성제대 문학부에 진학함으로써 그 생애 첫 발을 법조계에 내딛게 된다.
해방된 조국의 국민으로서 그는 건국의 기반을 다지는데 앞장섰으며, 한국전쟁 이후 폐허가 된
터전 위에 국가 재건이라는 큰 책무를 짊어졌다. 외국무대를 누비며 한국의 국익을 대변했고,
국내 정치무대 에서는 최연소 국무위원으로서 혼란한 정치상황을 헤치고 나라의 기초와 질서를 만들어 갔다.
5.16 후 그는 언론계에 투신했다. 제3공화국에서 5공화국을 거쳐 오면서 모든 시련을 뛰어넘어
명실상부 시대를 앞서가는 새로운 언론상을 정립하였다.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면서 어디서나
유민은 우리의 역사 속에 있었고, 역사 그 자체를 만들어 왔다.
유민의 연보
- 1987국제신문발행인협회가 수여하는 공로패 추서
- 1986금관문화훈장(1등급) 추서
- 1986별세
- 1985국제신문발행인협회 이사회를 서울서 주관
- 1982국제신문발행인협회(FIEJ) 집행위원회 이사 재선
- 1981자유중국 문화장장(문화훈장) 수훈
- 1980중앙일보·동양방송 회장 / 한국신문회관 이사장 선임
- 1977자유중국 '중국문화학원'의 명예박사
- 1975중앙일보 · 동양방송 대표이사 사장
프랑스 정부의 문화훈장 '예술 및 문학기사장' 수훈 - 1974국제신문발행인협회(FIEJ)이사 선임
- 1973IPI한국위원회 이사 · 아시아신문재단 한국위원회 이사
- 1970국민훈장 '모란장' 수훈·한국신문협회 부회장
- 1969동양방송 대표이사 사장
- 1966중앙일보사 대표이사 회장
- 1965중앙일보사 이사 부사장
- 1964동양텔레비전방송주식회사 이사
라디오 서울방송주식회사 대표이사 사장 - 1960내무부 장관
- 1958법무부 장관
- 1957대한국제법학회 부회장( ~68.7)
- 1955제2대 해무청장
- 1954제네바 회담 대표 / 법무부 차관
- 1953한·일회담 대표(제2, 3차) 재산청구권분과 위원장
- 1951한·일회담 대표(제1차) 재산청구권분과 위원장
- 1950제1회 고등고시 사법과 고시위원(이후 10회 역임)
법무부 법무국장
- 1948법무부 조사국장·법전편찬위원회 위원
- 1947조선변호사시험(1회) 위원(이후 3회 역임)
- 1946사법부 법률조사국 법무관
- 1945사법요원양성소 교수 / 법제부 법제관
- 1943전주지방법원 판사
- 1942경성지방법원 사법관 시보
- 1941고등문관시험 사법과 합격
- 1940경성제대 법문학부 법과 졸업
- 1937경성제대 법문학부 법과 입학
- 1934경성제대 예과 문과 입학
- 1930경성 제1공립고등보통학교 입학 (현 경기중·고등학교)
- 1917부 洪性佑(홍성우/남양 홍씨), 모 李文益(이문익/전주 이씨)의 장남으로 출생(경기도 고양군 한지면 하왕십리 2통 5호)